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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정보/역사 상식

꼭 알아야 할 제국주의 역사는?

by 사콜 사콜 2021. 6. 7.

꼭 알아야 할 제국주의 역사는?

 

안녕하세요? 오늘의 주제는 제국주의에 대한 역사 상식입니다.

 

헬레니즘의 알렉산드리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동서를 잇는 대제국을 건설합니다. 그의 제국이 만들어낸 문명을 헬레니즘이라고 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열렬한 그리스 문화의 추종자였지만 제국을 건설하고 난 후 구체적 운영에 대한 체계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찾았습니다.

 

다른 문화에 대한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를 유지한 알렉산드로는 다인종으로 구성된 복합적 제국을 추구했으며 그래서 동서문화가 잘 융합된 헬레니즘 제국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헬리니즘을 대표하는 도시 중 하나는 지금의 이집트에 세워진 알렉산드리아입니다. 작은 어촌 마을에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대규모의 공공 토목공사를 통해서 건설된 이 도시는 헬레니즘 시기 상공업과 교류의 중심지였습니다.

 

또한 해안의 배들이 원활하게 드나들기 위해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섬에 등대를 건설했습니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이 등대의 높이는 135M라고 전해지는데 불빛을 내기 위한 연료를 무엇으로 사용했는지, 어떻게 이렇게 높은 등대를 건설했는지 등 파로스섬의 등대에 대한 의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아 고대 7대 불가사의로 꼽힙니다.

 

도시의 중심에는 신전이 있었고 신전의 문은 자동문이었다고 합니다. 도서관과 박물관이 있어서 많은 학자가 모여들었고 공원과 넓은 도로, 거리를 청소하는 인력 등 도시 위생을 위한 다양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의 시각으로도 매우 발전한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에는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지중해의 중심 도시로 더욱 발달했습니다.

 

청동기 시대

 

이 시기 농업생산기술의 발달로 잉여생산물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이는 자신에게 필요한 다른 물건을 가질 수 있는 교환의 매개물이 되었습니다.

 

원하는 농기구나 토기가 있고 이것을 만드는데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나의 잉여물과 물건을 교환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만든 물건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면 그는 더는 농사를 짓지 않고 물건만 만들어도 생활에는 지장이 없게 됩니다. 이렇게 장인이 생기게 됩니다.

 

만약 장인과 그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같은 곳에 살지 않는다면 물건과 사람을 연결하는 전문적 상인이 등장했을 겁니다. 상인들은 여러 곳에서 물건들을 가져와 교통이 편리한 특정 장소에 모여 거래했고 이런 매매의 장소는 시장이 됩니다.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거주하면 도시가 되었고, 도시 안에 사는 사람과 물건을 보호하기 위해 도시민들은 성벽을 쌓아서 안과 밖을 구분했습니다.

 

경제적인 면에서 도시 발생과정을 보면 위의 과정과 같습니다. 도시가 만들어진 또 다른 원동력은 무엇이 있을까요?

 

유적을 통해보면 4대 문명의 발상지들에는 도시유적들이 발견되는데, 모든 도시에는 신전으로 쓰인 건축물들이 발견됩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신전은 지구 라트라 고하며 거대한 규모로 도시의 중심을 장악해 사람들을 압도합니다.

 

이집트에서는 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왕이자 태양의 아들, 파라오가 신 그 자체였기 때문에 왕과 왕이 사는 왕궁이 도시의 중심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신으로 추앙받던 왕이 죽게 되면 그의 사후 세계를 책임지는 곳을 성대하게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피라미드입니다.

 

인도의 인더스 강가의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유적에는 구운 벽돌로 만들어진 계획도시로 신을 향한 의례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공공 목욕탕과 하수도 시설이 발굴되고 있습니다.

 

중국 황허 문명에서는 상나라 수도인 은허가 발굴되었습니다. 은허의 중심지에는 흙을 쌓아 만든 제단과 궁전, 신전을 두었습니다.

 

중국 왕인 천자는 글자 그대로 하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왕이 거주하는 왕궁 자체가 도시의 중심으로 존재했습니다. 유적지에서 한자의 원형인 갑골문자가 발견되었는데 갑골문자를 해석해보면 왕이 신에게 뜻을 물어 사람들을 지배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도시가 구성되는 정치적인 원동력은 신 그리고 종교와 관련이 깊습니다.

 

앞서 종교에 대해서 살펴보았듯이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나 불행이 신의 뜻과 관련 깊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도시의 중앙에 신을 모시는 신전을 두고 중심지로 삼았으며 신전의 신관은 신의 뜻을 전달하면서 도시를 이끄는 지도자 역할을 했습니다.

 

자연재해나 전쟁, 도시민 사이의 갈등에 대해서 신의 뜻을 묻고 신의 권위를 빌어 사람들을 지배했던 것입니다.

 

도시를 지배하는 왕으로 군림하기 위해서는 신이 부여한 권리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대규모 치수 사업 등에 성공해서 도시민들을 성공적으로 안정적으로 부양해야 했고, 법규를 만들어서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최소화해야 하는 노력도 필요했습니다.

 

밖으로는 전쟁에서 도시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기도 했죠. 도시의 지배자가 이상의 역할들을 잘 해낸다면 도시는 흥했고 그렇지 못했다면 결국은 멸망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흥한 도시들의 규모는 점점 커졌고 도시 내 거주하는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농토(토지)가 필요했습니다. 도시국가들 사이에서는 자주 전쟁이 벌어졌는데, 전쟁이 빈번해지고 규모가 커질수록 신관보다 전쟁을 지휘하는 장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장군들은 전쟁에서 이겨 다른 도시들에게 영향력을 키워가며 결국은 왕이 되었습니다. 도시국가들이 다른 도시들을 점령해가면서 도시의 규모는 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거대해졌습니다.

 

제국의 성패는 지배 수단의 효율성과 안정성에 있었습니다. 넓어진 영역 안에서 국가가 제공하는 안정성 위에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상업, 교역이 증가해 제국의 중심 도시로 많은 사람이 모여들면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의 기능인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도시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청동기 시대부터 시작된 도시들의 형성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4대 문명에서 만들어진 각각의 도시들과 그 후 확대된 제국의 수도들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고하고 서로 유사한 점들이 매우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 큰 강을 중심으로 건설되었고 치수가 도시의 성립과 큰 관련이 있었으며, 도시 구조에서는 사원 등 신성한 의식을 행하는 종교 지역이 따로 있었고, 계층별로 주거지가 분리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도시는 인류가 공간에 대해서 공통으로 만들어낸,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인 의사소통의 집적 과정을 통해 일궈낸 문명 최대의 발명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아테네

 

서양문명의 기원인 고대 그리스의 도시들은 지중해 동쪽 발칸반도 끝에 여러 개의 도시국가로 이루어진 지역이었습니다.

 

각 도시국가들은 폴리스라고 불렸는데 대표도시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였습니다. 해안선이 복잡하고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져 농업만으로는 자급자족이 어려운 지역이었기 때문에 올리브 등을 생산해 해상무역을 했습니다.

 

아테네 등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주로 중심에 언덕이 있고 주변은 평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중심에 약간 높은 언덕만을 폴리스라고 했었지만 나중에는 도시국가 자체가 폴리스라고 불렸습니다. 중심 언덕은 아크로폴리스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기본적으로 주변지역보다 높아서 수비에 유리했고 성벽을 쌓아서 방어 기능을 높였습니다.

 

각 폴리스는 아크로폴리스에 자신의 도시를 수호해주는 신전을 세우고 도시의 중심지로 삼았습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는 파르테논 신전이 세워졌는데 그들의 도시를 수호해주는 아테네 여신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아크로폴리스가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라면 시민들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진 중심지는 아고라였습니다. 아고라는 광장이라는 의미였고 광장 둘레에는 기둥이나 벽 혹은 건물을 세웠고 그 건물에는 상점들이 들어서 시장의 역할을 했습니다.

 

아고라는 물건이 매매되는 시장으로 경제 중심지이자 사람들이 모여 여론을 만들고 국방이나 정치적 토론을 하는 정치 중심지, 학문과 사상을 토론하고 연극 무대와 체육시설로도 쓰인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 이기도 했습니다.

 

작은 도시 국가인 폴리스가 제국으로 발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지형적으로 산과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좁았고 도시 국가들을 하나로 묶을 통치 구조 또한 없었습니다.

 

이들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으로 더욱 강화되었고 폴리스들끼리의 주도권 싸움인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에는 급격하게 쇠퇴하게 됩니다. 결국 고대 그리스는 그들이 야만인이라고 여겼던 북쪽의 마케도니아에게 멸망하게 됩니다.

 

제국주의란?

 

제국주의를 사전에서 찾는다면 2가지의 의미가 나옵니다.

 

먼저 제국이란 다른 민족이나 나라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국가를 의미합니다. 두 번째 의미로는 맥락으로 살펴봐야 하는데, 제국에 주의가 붙으면 19세기 자본주의가 극단적으로 발달한 국가들이 자본 확장을 위해 다른 지역의 영토를 식민지로 삼는 것입니다.

 

19세기 제국주의에 대한 설명의 시작은 산업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결과로써 돈을 버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형성되었습니다.

 

유럽과 미국, 아시아의 일본 등으로 퍼진 산업화로 인해서 동시대의 지구에는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로 나누어졌습니다.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들이 항상 풍요롭고 성공적인 경제발전을 이루었던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경제 공황이 일어나기때문에 공황을 겪게 되면 경제가 어려워져 직장을 잃은 실업자가 증가했고, 이는 국가 입장에서 정지척, 경제적, 사회적 불안요소였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 당시 자본주의 국가들이 비교적 손쉽게 선택한 방법들 중 하나가 바로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식민지가 원래 갖고있는 자원을 수탈하거나 식민지 사람들의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해 대농장을 경영하는 등으로 이윤을 극대화시켰습니다. 그뿐 아니라 과잉 생산된 물건을 소비하는 시장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식민지는 식민지를 통해 벌어들인 자본을 다시 투자해 이윤을 얻는 자본의 투자처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했습니다.

 

앞선 로마나 몽골제국이 다른 지역을 정복하고 지배하면서 갖게 된 식민지는 정치적인 의미가 컸지만 19세기 제국주의 국가에 식민지는 경제적인 약탈이 가장 먼저였습니다.

 

이전 제국들은 역참제 등의 제도 정비를 통해서 통치의 효율성을 높였지만, 19세기에는 어디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증기기관차와 증기선 등의 교통 발달과 유선통신과 무선통신의 개발로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도 손쉽고 신속하게 연락할 수 있었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이전보다 수월하게 식민지에 연락이 가능했고 효율적인 통제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기술의 발달은 공장 기계에만 활용된 것은 아닙니다. 강철로 군함, , 기관총, 대포가 만들어졌고 서구 열강은 식민지로 삼고 싶은 나라가 있다면 그들의 저항을 신무기의 강력한 무력과 화력으로 진압할 수 있었습니다.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 약도 개발되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내륙으로의 진출을 도왔습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좀 더 많은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치열한 전쟁을 벌였고 식민지배를 당하는 입장의 국가들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져만 갔습니다.

 

그 당시의 백인들은 자신의 이런 제국주의적 팽창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이론을 만들어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백인우월주의입니다. 백인들이 세계 제일의 문명인이고 인종적으로도 타인종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유럽인인 백인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백인이 아닌 인종들에게 자신들의 문명을 전파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이자 책무라고까지 여겼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원인- 제국주의

 

백인우월주의를 사회학적 이론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이론은 사회진화론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에 영감을 받은 스펜서가 사회현상에 진화론을 적용한 것입니다. 약육강식으로 국제관계를 설명하며 약한 국가에 대한 강한 국가의 지배를 정당화했습니다. 이런 논리의 파급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식민지가 된 지역을 청년들은 자국의 신세를 한탄하며 지배받게 된 이유가 궁금했을 것입니다. 궁금하지 않더라도 출세를 위해서 제국주의 국가로 유학을 가곤 했는데 그들이 그곳에서 배운 것이 바로 이런 식의 이론들이었습니다.

 

상상해보면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제국주의 국가의 도시에서 합리와 이성, 논리를 앞세운 백인들의 이론을 공부하고 식민지 고국으로 돌아온 지식인이 있고, 지식인 그들의 눈에 비친 비위생적이고(제국주의 국가들의 표현) 수탈당하며 억압받는 문명화되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서구화되지 못하고 근대화되지 못한 자국민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식민지 청년 지식인에게 사회진화론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을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백인들의 종교인 크리스트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5세기 신항로 개척과 16세기 종교개혁 등의 영향으로 가톨릭은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새롭게 알려진 지역으로 선교사들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보내진 선교사 중에는 중국으로 보내진 마테오 리치와 일본에 가서 임진왜란 때 일본 장수를 따라 조선에 온 세스페데스가 있습니다. 이들은 유럽에 새로운 지역에 대한 정보를 알렸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무역을 통해 돈을 벌고자 하는 자본가와 같은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19세기 초 아직 아프리카 내륙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교사 리빙스턴은 내륙을 탐험하고 얻은 정보를 영국에 보냈습니다. 리빙스턴은 늘 20명 남짓되는 아프리카 사람들과 함께 탐험을 했는데, 하인이 아닌 친구로 대했습니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를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신의 뜻대로 사랑을 실천했으나 그가 보낸 정보들은 유럽인들에게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을 수 있는 유용한 정보로 활용되었습니다.

 

유럽의 아프리카 수탈은 매우 잔혹했습니다. 특히 벨기에의 왕 레오폴트 2세는 손꼽히는 잔혹성을 보였습니다. 그는 콩고지역을 식민지로 삼아 자신의 사유지로 사용했습니다. 콩고에는 고무나무가 자랐습니다.

 

당시 타이어가 개발되었고 전기가 주요 동력으로 사용되면서 전기가 통하지 안ㅇ르 전연체로 고무가 쓰였기 때문에 고무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시기였습니다.

 

고무를 통해 큰 이윤을 내려고 했던 레오폴트 2세는 콩고의 원주민들을 고무 생산에 동원했습니다. 개개인에게 할당량을 정해주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손을 자르거나 자녀들을 인질로 삼는등 잔혹한 방식으로 수탈했습니다.

 

그 결과 1890 100톤이었던 콩고의 고무 수출량은 10년 후 6천 톤으로 증가했습니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공격적인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의 국가들은 근대화를 위한 개혁을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혁은 유럽 열강들의 방해와 자국 내 보수 세력 간의 갈등으로 실패했고 그 대가는 식민지로의 전락이었습니다.

 

우리의 아픈 역사인 일제 강점기의 역사도 19세기 제국주의 팽창의 맥락으로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제국주의 열강 사이에서는 식민지가 자기 민족과 국가가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수단으로 여겨지면서 , 초기의 단순한 경제적 목적에서 점점 확장되어 정치적이고 사회문화적인 성격까지 갖게 됩니다.

 

제국주의 국가들끼리의 치열한 경쟁은 결국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의 주요한 원인이 됩니다.

 

이상 도시와 제국주의의 역사 상식 정보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유용한 상식 정보를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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